[1] 이베리아 국왕. 혼인 조약에 따라 명목상 공동 국왕으로 칭해졌으나 계승권은 없었고, 왕비 사후 모든 칭호를 상실했다.[2] 평생 미혼이었다. 재위 45년간 여러 차례 혼인 협상이 있었으나 모두 성사되지 않았다.[3] 배우자의 지위만으로는 즉위할 수 없다며 국서가 되기를 거부했고, 의회는 결국 공동 즉위를 제안했다. 루이나 역사상 유일한 공동 통치 사례다.[4] 스카니아 왕제. 계승권 없는 국서로 남았으며 국정에 관여하지 않았다.[5] 왕실 재정과 산업 박람회를 주관하며 사실상 공동 통치자로 기능했다. 루이나 국서 가운데 국정에 가장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.
